미운 세살과 신데렐라 마음 나누기


상담을 하다보면 많은 부모님들께서 호소하는 이야기가 있다.

'두살 넘어가더니 우리애가 달라졌어요...'

이른바 '미운 세 살' 이야기다.



그토록 귀여웠던 두 살은 어떻게 -부모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세 살이 되었을까?

예전에 공부했던 내용을 찬찬히 돌이키다 보니, 세 살 아이들의 심리상태와 신데렐라 이야기에 미묘한 공통점이 있었다.

게다가 신데렐라 이야기는 예나 지금이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 무렵의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가 아니던가?

흥미롭다.



'미운 세 살'의 현실은 어떨까?

유아기를 막 끝낸 이 친구들은 폭발적 변화를 느끼게 된다.

눕거나 기던 자신이 일어나서 걷고, 심지어 뛰는! 광활한 세계의 탐험가가 되었고

도대체 알수 없는 소리로 가득했던, 영상으로 의지하던 과거에서, 소리를 듣는 것으로도 모자라 나의 이야기를

사람들을 움직이는 웅변가가 되었고, 게다가 몸짓 하나, 말한마디씩만 더 해도 주위의 어른들이 열광하는 스타...

스페이스 메가수퍼 아기왕의 탄생이다.



그러나 세상일이 다 그렇듯, 이 친구들의 높은 자율성은 기존 권위와 부딪히게 되고, 강한 욕구는 좌절과 맞닥뜨리게 된다.

긴 이야기의 시작.




신데렐라에게는 양어머니와 어느 날 마법처럼 찾아온 요술할머니가 있다.

사실 이 두 사람이 신데렐라에게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야말로 극과 극이다. 거의 선과 악이라고 하면 맞다.

그리고 '미운 세살 친구들'에게도 매일 매일 극과 극을 보여주는 인물이 있다. 바로 엄마.


이 시기의 친구들은 '통합'의 개념이 미숙하다.

특히 과거~현재 이렇게 이어지는 시간의 연속성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현재'에 촛점을 맞추게 된다.

잘못해서 벌을 받으면 엄마는 나쁜 부모의 원형이 되어버리고, 자신은 희생자가 되다가도,

마이쭈를 받는 즉시,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천사가 된다. 마치 요술할머니처럼..



무도회에 가고싶은 욕구로 불타는 신데렐라에게 요술할머니는 시궁쥐, 호박같은 물건들을 가져오라고 한다.

그리고 그들을 꾸며주며 밤 12시 전까지 들어오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가장 흥미로운 대목이다.

왜 신데렐라에게 시궁쥐나 호박을 가져오라고 했을까? 그냥 자기가 요술로 만들어 주면 될 텐데..

또.. 12시 전까지 들어오라고 한 이유는 뭘까? 왕자님이랑 쭉~ 데이트를 했다면 제대로 애프터 신청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세살 친구들에게는 엄마와의 애착을 통해 '안전기지'를 만들고 그 주위부터 서서히 범위를 넓혀가며 탐색하기 시작하는데,

이럴 때 필요한 물건이 엄마의 따듯함을 느끼게 해주는 물건이다. 마치 라이너스의 담요처럼.

그건 평소 자신과 아주 친숙한 물건들인데, 현실이 시궁창인 신데렐라에게 친구는 역시 시궁쥐.. 그래도 이건 좀 너무한가?

아무튼 친숙한 물건들을 대동했기에 신데렐라는 첫 무도회, 왕자를 만나러 가는 길이지만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도회에 들어간 신데렐라는 어땠을까? '내가 봐도 이쁜' 드레스, 처음보는 사람들도 수근거릴 정도의 '아름다움'..

아기왕과 비견될만한 도취감에 사로잡히지 않았을까?

요술할머니와의 약속도 잊어버릴만큼 '충분히 자율적'으로 행동한 신데렐라에게 12시가 찾아온다.

천사와 같았던 요술할머니는 신데렐라의 자율의지를 좌절시키고 모든 것은 원점으로 돌아온다. '유리구두'빼고...



마찬가지로 세 살 친구들은 과도한 자기 중심주의로 인해 세상이 자신의 생각대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데

현실과 맞닥뜨리며 자신의 한계를 느끼게 되고 현실적인 감각을 갖게 된다.

그래서 아이들의 폭발적인 자율성에 대한 부모의 대처가 중요하다.

과도한 억압은 아이의 자율성을 떨어뜨리고 자율적인 행동에 대한 불안감을 키울 것이며

무조건적인 수용 역시, 아이들에게 비현실적인 자신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적절한 좌절과 타협속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한계를 느끼게 되고 발달의 새로운 단계로 진입한다.

'싫어'를 반복했던 아이가 '순응'을 학습하는 감동적인 순간이다.




신데렐라는 잠시나마 자신의 욕구를 채웠다. 그리고 현실적인 자신으로 돌아온다.

현실의 신데렐라는 다시 시궁창으로 돌아온 것에 대해 비탄하지 않는다. 왜일까?

유리구두가 있었기 때문에..

유리구두는 현실적인, 그리고 만족할 수 있는 타협을 의미하며 그를 통해 생겨난 자신감의 상징이다.




미국의 아동심리학자 게젤(Arnold Lucius Gesell)이 이런 말을 했다.
'아동의 완고함이나 반항이 두살 반에 극에 달한다. 이 시기가 학동기 이전에 부모들이 가장 화나는 기간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미운 세살은 공통적인 것 같다.

우리 안에 있는 신데렐라들이 더욱 아름답게 커 나갈 수 있기를 기원한다.

더불어 그 신데렐라들과 함께 울고 웃는 부모님들께 박수를 보낸다.




욕구와 함께 하는 삶 마음 나누기

세상 살다 보면 여러가지 이야기에 귀가 쫑긋거려진다.



"열정에 맡겨라..

몰입해라..

이기는 습관을 가져라.."



그런가??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멈추면 보인다.."



그런가??



"시크릿.. 어쩌구.."



@.@..



서점에는 수많은 자기계발서가 베스트셀러 서가를 점령하고 있지만, 독자들의 변화는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다.


모두 잘 살아보자고 하는 일인데, 과연 잘 사는 것이란 무엇일까.


그 기준은 너무나 다양하겠지만, 잘 사는 인생, 성공한 인생의 중요한 기준은 '행복'이 아닐까.


그리고 그 행복의 시작점은 내가 진정 원하는 것.. '욕구', '욕망' 여기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욕구, 욕망 이런 단어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체면 문화때문에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자기 마음 속에 있는, 살아 꿈틀거리는 욕구를 마주 볼 때, 그리고 그것을 채워줄 때 사람은 비로소 만족감을 느끼게 됨을 누구나 알고 있지 않은가?


욕구는 거대한 시작이다. 몰입이나 열정은 그 다음에 자연히 따라오는 산물이다.


오늘, 이번 주, 이번 달, 올 해.. 각각 꿈꾸는, 이루고픈 욕구가 많은 사람은 행복하다. 그리고 건강하다.


이 블로그는 욕구와 행복에 대한 곳이다. 많은 담론이 나누어지길 바란다.




첫날 짧게 끝.

...



난 오늘부터 블로그를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과 더욱 행복해지고 싶은 나의  욕망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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